어떻게 현남에서 지내게 됐나요?
희주 20년도쯤 양양에 서핑을 하러 왔었어요. 뉴질랜드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 서핑을 해봐서 우리나라에도 서핑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에 오게 된 거였죠. 가볍게 왔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휑하다 싶을 정도로 손을 타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자연과 가까이에서 지내던 뉴질랜드, 호주와 비슷한 환경이었어요. 그렇게 1년에 3,4번씩은 오게 됐어요. 그러면서 ‘나중에 여기서 살아봐도 좋겠는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죠.
그때가 워킹홀리데이에서 돌아온 후 서울에서 일할 수 있는 카페를 찾고 있을 때였어요. 코로나 시기여서 서울에서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없던 와중에 양양의 갯마을 해변에 있는 작은 카페의 구인공고가 눈에 띄었어요. 그렇게 일을 먼저 구했고, 집을 구하면서 양양에서의 생활이 시작됐죠.
대기 저는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양양에 자주 놀러 왔었어요. 본가가 춘천이거든요. 양양이 가장 가깝고, 친숙한 바다였어요. 어느 새부터인가 죽도해변에 서핑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의 에너지와 죽도 인근의 젊은 분위기가 매력적이었어요. 나도 서핑을 하고 싶다, 저 분위기에 속하고 싶고,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서울에서의 회사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회사 밖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을 때 양양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일단 왔어요.
어떤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 좋은 기억이 있던 양양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그래도 양양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수 있는데 양양에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또 있을까요?
“안 그래도 괜찮아, 하는 예시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희주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서울의 한 방향의 삶의 패턴이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커피를 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든 살 수 있어’라는 생각이 있었죠. 그래서 커피로 유명한 뉴질랜드와 호주로 워홀을 다녀오게 된 거구요.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자기의 일에 집중하고 자신의 즐거움을 즐기며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을 봤어요. 돈을 많이 벌거나, 어떤 유명세를 떨치거나 하는 일관적이고 일반적인 목표보다 정말 자기가 원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요. 저도 내 일을 할 수 있고, 자연과 가까이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환경에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 똑같이 살지 않아도 괜찮아, 하는 예시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워킹홀리데이에 돌아와서 경주, 제주도 등 커피로 유명한 다양한 지역을 고민하기도 했는데 양양만큼 확 끌리진 않았고요.
대기 저는 서핑이 가장 큰 이유였어요. 바다를 바라보거나 수영을 할 때, 저 바다 한가운데에서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멋져 보였고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그냥 저도 그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어요.

양양에 와서 살아보니 어떤가요?
희주 양양에서의 삶 자체가 그냥 만족스러워요. 제가 좋아하는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는 그 자체로 만족도가 높아요. 여기에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맘에 드는 그런 마음이에요. 서핑하고 물놀이하고 태닝하고 바다에 통발 던져놓고 등등등 여기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맘껏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의 현생은 뭐, 완벽해요.”
대기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그냥 지금 완벽해요. 이 삶이. (웃음) 서핑도 즐겁고 희주도 있고. 사실 처음 왔을 때는 힘들었어요. 처음 온 시기가 3월이었는데 3월의 양양은 문 연 가게도 없고 사람도 없고 마치 유령도시 같았어요. 그래서 양양의 겨울이 두렵기도 했는데, 지금 겨울을 지내보니 겨울 서핑도 즐겁고 눈 쌓인 겨울의 양양도 매력적이더라고요.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은 없나요?
대기 일자리가 문제이긴 해요. 저도 여기서 지낸 첫해에는 일하던 카페가 문을 닫아서 양양을 떠났어요. 겨울의 양양은 문 연 가게가 없어요. 당연히 사람도 없고요. 그래서 지금은 프리랜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자립하기 위해서 뭔가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어요. 그걸 잘 발전시켜야 여기서의 삶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희주 맞아요. 저도 커피를 너무 좋아하고 바리스타일을 사랑하지만 지금은 안정적으로 4계절 일할 수 있는 리조트에서 서빙 일을 하고 있어요. 물론 사람들 대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잘 맞긴 하지만 좋아하는 커피 일을 못하니까 답답함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지만 양양에서 지내려면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가게가 있어야 4계절 일할 수 있겠더라고요.
두 분 다 양양으로 오신지 3년 정도 됐는데, 이제 여기가 내 동네라고 느낄 때가 있나요?
희주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길 때요. 바다에서 쉬고 놀고먹고 하는 일상을 보낼 때 여기가 내 동네구나 싶어요. 서울에서는 데이트를 해도 맛집을 찾아가고 영화관에 가고 하는 정해진 틀이 있는데 저희는 날씨가 좋네? 싶으면 연 날리고, 수영하고 태닝하고 서핑하고 하거든요. 바닷가에 통발을 던져놓기도 하고요. (웃음) 뭔가 그런 좀 이상한?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즐길 때 여기 사람이구나 생각해요.
대기 저도 마찬가지로 그런 일상이 만족스럽긴 하지만 여기가 내 동네라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여기에 정착해야지 하는 생각도 없고요. 저는 항상 어디든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어디든 2년 정도 살아본 후 떠나왔어요. 양양이 2년을 살고도 살고 있는 집을 재계약해서 2년 연장하게 된 게 특이한 경우이긴 해요. 그래도 여기서 평생 산다고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 같아요.

정착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대기 진지하게 바뀔 것 같아요. 진지하고 무겁게. 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하겠어요. 제주도나 다른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기도 하고요.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본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양양에서의 삶을 완벽하다고 말했던 이유도 가벼운 마음이어서 인가 봐요.
“그렇게 돌아다녀 보니, 나에게 뭐가 필요한 지 알겠더라고요.”
희주 저도 대기 나이 때에는 그랬던 거 같아요. 그래서 30대 초반까지는 다른 지역, 다른 나라를 자주 오갔기도 했고요. 최대한 많은 곳을 다 가보고 싶었어요. 저도 그땐 제가 평생 돌아다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돌아다녀 보니 나에게 뭐가 필요한 지 알겠더라고요. 지금은 돌아다닐 이유가 없어졌어요. 양양이 제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제 정착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자기가 겪어온 경험이나 상황에 따라서 정착에 대한 무게감이 다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양양에서의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게 있나요?
희주 저는 그냥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삶에 필요한 건 몇 가지로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르고요. 저는 일, 집, 교회만 있으면 어디든 살 수 있어요. 친구는 어디서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자기한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찾아야하는 것 같아요. 아, 지금 저는 양양에서 필요한 게 있어요! 정착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까 제도적인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대출이나 창업정보, 주거지원 정보 등을 알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해요.
대기 저는 서핑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곳에 살기가 정말 힘들 것 같아요. 양양은 양양의 매력 포인트가 너무 확실해서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너무나도 살기 좋은 곳이지만 그냥 양양의 이미지만 보고 오는 사람에게는 하드코어에요. 완전히.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밥을 사 먹기도 어렵고, 자차 없이는 이동하기도 어렵고요.
희주 그래도 저는 서울을 기준으로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살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많은 것들이 주입된 것 같아요. 배달 서비스나,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 같은 것들이요. 1+1이면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괜히 더 사게 되고 하는 것들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해요.
대기 그런 것 치곤 올리브영 1+1을 너무 좋아하지 않아요?
희주 아니야………